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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연재] 한연의 비너스(1화)
글로밥상
2020. 11. 9.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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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밥상=글로 나아가는 이]
낙엽이 흐르는 한연대학교 캠퍼스. 가을은 고요했다. 학생들은 익어가는 단풍을 보며, 인생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뿜어내고 있었다.
오전 11시 40분, 하루는 계절만큼 깊게 흘러가고 있었다. 새하얀 블록 건물 앞에는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근은 주차장이 침범하지 못한 학동의 벤치에 앉아 흘러가는 학교의 ‘1초’를 그려냈다.
근은 가장 좋아하는 인물화 수업이 끝난 후, 햇살을 마주하며 스케치 하는 걸 좋아했다. 도화지 속에는 짙게 드리어진 나무와, 강하게 물든 낙엽, 그리고 다리를 꼰 한 여학생이 있었다. 그녀는 순수한 듯 어색하게 왼쪽 다리를 오른쪽 다리에 얹었다.
건조하고 맑은 공기는 그녀의 새하얀 다리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그녀는 주황색 립스틱은 생기발랄해 보였다.
몸에 달라붙는 하얀 니트에 검은 미니스커트. 그녀가 근을 바라보았다. 놀란 근은 고개를 숙였다.
'분명 방금 전까지 있었는데?......'
그녀는 빠르게 그에게 다가왔다. 검은색 웨지힐은 그녀의 날씬한 각선미를 돋보이게 했고, 근의 심장은 빠르게 달아났다.
엉덩이에 달라붙은 검은 소재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마른 듯 마르지 않은 듯 곡선을 타고 내려오는 그녀의 다리는 근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누구나 알 것이다. 젊은 여대생의 짧은 치마는 이성의 욕망을 자극한다는 것을.
결국, 그녀는 그의 시선을 따라 빠르게 지나쳤다. 설렜다. 근은 신에게 여성이라는 존재를 만들어 줌에 감사했다.
같은 과 귀여운 후배들과 점심 약속이 있었다. 그는 입학 후 지금까지 식사를 함께한 다양한 여학우들과 잠자리를 가졌다. 즐거운 학교생활이었다. 교내 여성들의 몸을 상상하는 일은 흥분되는 일이었다.
시도때도 없이 손거울을 들여다 보는 여학생들은 큰 눈에 버선 모양의 코, 전형적인 성형 미인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들은 얇은 허리에 풍만한 젖가슴을 지향했다. 어쩌면 서양화과에 있는 가장 흔한 여성들이었다.
또 다른,매력적인 부류는 청순 가련한 생머리에 적당히 찢어진 눈매와 도도한 웃음을 띈 고양이상의 여학생들이었다. 그런 여학생들은 남다른 연애 철학으로 근을 휘어 잡을 것만 같았다.
때론 이런 상상도 했다. 그녀들은 말을 잘하니 입술을 꽉 깨물어 새빨간 피를 맛보고 싶은. 그녀들은 적당히 열린 마음과 ‘성’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몸의 실루엣에서 고스란이 드러났다.
너무 많은 여학생들이 있어, 모든 존재를 분류할 순 없지만 근은 여학생들을 그렇게 분류해놓고 날마다 상상했다.
학동과 연동 사이에는 큰 동상이 하나 있었다. 그리스 시대의 조형의 미를 살린 모습. 근은 오전 수업이 일찍 끝나면, 동상을 바라보며 명상을 했다. 물론 도발적인 여성의 모습을 상상하지는 않았다. 그 동상은 근접할 수 없는 신성함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녀를 ‘한비’라고 불렀다. ‘한연의 비너스’ 대한민국의 대학교 안에 서양의 조각물을 세웠다는 것은 둘 중 하나다. 학교의 가치관과 연결시킬 어떤 작품이 필요해서, 혹은 어떤 저명한 교수나 자매 결연을 맺은 학교에서 학교의 무궁한 발전을 위해 기부했거나. 학교 내에서 만남 약속을 잡을 때면, 늘 학생들은 ‘한비’ 앞에서 만나기를 청했다.
“근 오빠!”
누군가가 근을 크게 불렀다. 근은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전혀 궁금하지 않았다. 근의 머릿속은 온통 오전에 봤던, 숨 막히는 각선미를 소유한 그녀로 가득 차 있었다. 근은 핸드폰을 들어 시간을 체크했다. 오후 3시 15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오빠, 저희 왔어요!”
빨간 체크난방에 곤색 플레어어 스커트를 입은 후배, 살색 H라인 스커트에 싼 가격이지만 옷 맵시를 격하게 살린 듯한 청록색 봄 니트를 입은 후배가 나란히 다가왔다.
“어, 왔어? 둘 다 화사하게 입었네”
화사하지 않았다. 전혀. 사실 ‘근’은 그녀들의 패션 센스가 정말 꽝이라고 생각했다. 근은 그녀들에게 “뭘 먹을 거냐”고 물었다. 그녀들은 별 생각이 없는 듯했다. 제육볶음과 돼지김치찌개, 그리고 참치 야채 볶음밥을 먹었다. 교내 식당 중에서 연동의 식당은 가장 맛이 좋은 곳이었다.
근은 항상 연동 식당에서만 밥을 먹었고, 일주일에 2번 정도는 새로운 여자아이들과 함께 먹었다.
‘섹스 칼럼니스트’ 인희가 하는 매혹적인 특강를 들은 날은 정말 기분이 좋았다. 근은 인희가 참으로 탄탄한 몸매와 그에 버금가는 풍성한 성의식을 가진 강사라고 생각했다. 23살의 피끓는 청춘에 성숙한 연상녀의 감각을 느끼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머릿속에서 근은 벌써 그녀의 품에 안겨 헤엄쳤다. 앞으로도 그런 진취적이고 성숙한 여성과 ‘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순 없을 것 같았다. 그녀의 수업이 끝날 때면 근은 아쉬운 마음에 몸부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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