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찌개/책속의 문장

[책속의 문장] 이미 모든 것을 살 수 있는 세속이지만, 사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다

글로밥상 2021. 4. 5.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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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모든 것을 살 수 있는 세속이지만, 사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다. 그리고 사지 말아야 할 것들을 상품의 바깥에 모시고 키우는 배려야말로 종교나 인문학적 감성이 간수해온 지혜의 알짬이다. 아무튼 사는 것은 결국 죽이는 것이지만, 자본제적 상품권 속에서는 ‘산다/죽인다’는 것을 ‘좋아한다’는 말로 연상화해서 고쳐 말하곤 한다. 그래서 닭이나 주꾸미를 좋아한다는 것은 닭이나 주꾸미를 튀겨서 죽인다는 뜻이며, 강산을 좋아한다는 말은 그곳을 훼손하겠다는 뜻이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위해를 가할 가능성이 가장 많은 이는 역시 좋아하는 사람이다. 하루도 남을 죽이지 않곤 살 수 없는 게 인간이다. 고등어와 돼지를 죽이고, 오리와 도룡뇽을 죽이고, 더덕과 양파를 죽인다. 남을 죽여야 우리가 산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그 죽임의 방식에서나마 인간다움의 노력과 예의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생명에의 외경’이야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라고 여겨도, 생명을 놓고 게임을 벌이는 것은 그만두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 사람들아! 

-‘죽임의 윤리’ 中​, 김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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