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찌개/감성독후감

[산문에세이리뷰] "늘 혼자가 서툰 당신께" 이병률, 혼자가 혼자에게

글로밥상 2021. 8. 17.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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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가 혼자에게

이병률 산문 에세이

첫눈이 온다는 건, 그 첫눈을 밟으며

당신이 올지도 모른다는

막연하지만 아름다운 가능성일 테니까


▲혼자라는 말

'혼자'라는 말. 촬영 차 들른 서점에서 가장 먼저 눈에 밟힌 단어였다. 혼자 살아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혼자서 고요히 읽고 느낄 수 있는 책이라는 느낌이 편안하게 다가왔다.

지나간 시간생각감정을 남기는 일. 삶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두 기록할 순 없지만 최선을 다해 순간을 남긴다는 건, 굉장히 의미있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에세이는 마음에 공감이 될 때가 많다.


가면을 쓰고 살깁다는 민낯으로 살기에 이 세상은 이미 충분하다고,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운데 어떻게 이 세상을 혼자 건너가겠냐고......, 이런 근사한 메시지를 포함하여 사진은, 삶의 순간순간을 착하게 대면하게 해줄 것이다. 그러니 세상이 침침하거나 두려울 때가 오면 카메라를 들어 안으로 건너다보이는 세상에 눈 맞추면 된다.

디지털의 잔치에 정신의 중심을 허망하게 빼앗기느니 잠시 잠깐 빌려서라도 필름 카메라를 가져봤으면. 필름 한 통, 그 스물네 장의 이야기 위에다 우리가 기다리고 기다리는, 대답이 살포시 쌓이게 했으면.

필름 사진에는 쨍함이 없으니 오만도 없을 것.

어떻게 어떤 사진이 나올지 모르니 찍으면서 조금은 떨릴 것.

그것이 무엇이라도, 지금 당장 우리가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것은 잔혹한 아름다움일 것.

이병률 산문 에세이, 혼자가 혼자에게 中


▲아날로그의 멋

'아날로그'가 '디지털'과의 다른 점은 '수정이 불가하다'는 것이다. 이는 큰 불편함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때론 있는 그대로의 매력으로 다가온다.

뽀샵이 한참 유행했던 시절이 있었다. 폰카와 디카(디지털 카메라)가 갓 세상에 나왔을 때, '뽀샵(포토샵/Photoshop)'은 우리를 열광하게 만들었다. 각진 턱을 깎고, 뭉퉁한 이마를 부풀리고, 작은 눈을 키우는 '가상성형'을 가능케 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점차 현실은 왜곡됐고, 범람하는 '가상의 미(美)'속에서 우린 진정한 얼굴을 잃어갔다.

완벽한 비율이 아니라도, 잡티 하나 없는 백안이 아니라도, 우리가 살아가는데 큰 문제는 없다. 짜여진 미에 홀린 듯 살지 않는 게 오히려 더 우리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

모든 게 짜여진 디지털의 늪 속에서, 아날로그의 진정한 멋은 있는 그대로의 '순간'을 담아내는데 있지 않을까.

인생의 진국은 결국 그 순간이 한참 지난 후 그 시절을 이해하고 추억할 수 있는 때가 오고, 그제서야 가슴 속에서 우러나오기 마련이니까.


밥을 먹을 때 그 사람과 함께여서 맛이 두 배가 되는 사람이면 좋겠다. 별 음식도 아닌데 그 사람하고 함께 먹으면 맛있는, 그런 사람이 옆에 있으면 좋겠다. 슬픔을 아는 사람이면 좋겠다. 슬픔을 알더라도 드러나지는 않지만, 또 어딘가에는 슬쩍이라도 칠칠맞지 못하게 슬픔을 묻힌 사람이면 좋겠다.

이병률 산문 에세이, 혼자가 혼자에게 中


▲화려하지 않지만 자꾸 같이 있고 싶은 사람

같이 있으면 빨리 떠나고 싶은 사람이 있고, 계속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

후자는 이런 사람이다. 언행에 수사가 많지 않아도 자신만의 무언가를 가슴 깊숙이 품고 있는 사람.

잘 보이기 위해 서로에게 실수하지 않기 위해 지나치게 신경쓰지 않아도 서로의 감성을 지켜주는 사람.

외모만큼이나 마음을 예쁘게 꾸민 사람.

그리고 가슴 한 켠에 슬픔을 간직한 사람.

언제 어떤 경험으로 그 슬픔이 생겼는 지는 모르지만, 슬픔을 증오나 원망이 아니라 '사랑'으로 극복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좋다. 참 좋다.


종교가 간절한 시대는 지난 것인지

사람들이 이제야 시간을 믿기 시작했다.

시간이 우리에게 기회를 주고 시간이 우리에게 보상을 해준다고 믿기로 한 것이다.

'혼자 있는 시간'을 아무렇게나 쓰는 사람 말고 '혼자 있는 시간을' 잘 쓰는 사람만이 혼자의 품격을 획득한다. '혼자의 권력'을 갖게 된다.

혼자 해야 할 것들은 어떤 무엇이 있을지

혼자 가야할 곳도 어디가 좋을지 정해두자.

혼자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도, 혼자 잘 지내서 가장 기뻐할 사람이 나 자신이라는 것도 알아두자.

이것이 혼자의 권력을 거머쥔 사람이 잘하는 일이다.

이병률, 혼자가 혼자에게 中


▲혼자의 품격 "혼자 있는 시간을 잘 쓰는 사람"

홀로 되보지 않은 사람은, 언젠가 결국 혼자가 된다. 뒤늦게 맞이한 혼자는 외롭지만 점점 익숙해진다. 혼자가 되면 오직 '나 자신'과의 시간을 보내야 하기에 어느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다. 무엇을 하든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이며, 자신이 한 일로부터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

요즘 필자는 혼자 있을 때, 대략 6가지 정도를 하는 것 같다. 부업, 독서, 글쓰기, 채널 콘텐츠 기획, 운동(헬스+러닝+사이클), 청소, 영화보기까지.

지금은 6개 정도면 충분하다. 다만 이것들을 그냥 번갈아 가면서 하는 게 아니라, 때론 그 깊이를 더하기 위해 시간과 돈을 쏟는다.

혼자일 때 하고 싶은 목록을 만들어 놓자. 그리고 계획해서든 우연히든, 혼자가 됐을 때 그 시간을 마음껏 누려보자. 힘껏 휘둘러보자. 혼자의 권력을 말이다.


언제, 런던에 갔을 때였다. 늦은 밤, 기차역에서 내려 숙소를 찾아가는데 신호들 옆에 나란히 서 있던 노신사가 어디를 찾아가냐고 물었다. 내가 대답을 하면서도 도처히 자신 없는 모습을 내비쳤던 모양이다. 자신이 그곳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나는 괜찮다고, 혼자 찾아가겠다고 말하면서도 절반은 노신사가 잡는 방향에 기대고 있었다. 15분을 이상을 걸어가는 길이었고, 15분 내내 길은 어두웠으며, 노신사가 원래 가려던 방향하고도 점점 더 멀어지고 있었다.

-집에서 멀어지고 있군요.

내가 미안을 섞어 말했다.

-가끔 집으로 가는 길을 잃어버리고 싶을 때도 있어요.

그가 내 말을 받으며 어두운 길을 밝혀주었다.

마침내 도착한 숙소 앞에서 노신사가 작별 악수를 청하며 내게 말했다. 자신은 시를 쓰는, 시인이라고. 그후 런던을 생각하면 문장 하나가 떠오르는데 그때 그일로 내가 만든 문장은 이렇다

런던에서는 길 헤메는 사람을 안내해주는 천사가 있는데 그 천사는 이름 대신에 '시인'이라는 칭호를 쓴다.

이병률, 혼자가 혼자에게 中



가끔 집으로 가는 길을 잃어버리고 싶을 때도 있다는 말. 무엇으로 더 설명할 수 있을까.

최근에 발매된 그룹사운드 잔나비의 곡 '외딴섬로맨틱'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이대로 이대로

더 길 잃어도 난 좋아

잔나비 '외딴섬로맨틱' 中


우리는 진정

길을 찾고 싶은 걸까.

길을 잃고 싶은 걸까.

길은 정말 존재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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