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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연재] 한연의 비너스(4화), 강의실의 칼날 그리고 정사

글한상/소설한상

by 글로밥상 2020. 11. 9.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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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밥상=글로 나아가는 이]

청소를 하며 생각을 정리하는 것은 꾀나 흥미로운 일이었다. 무언가 원래 있던 자리에 있지 않으면 안되는 것, 불안하고 무서운 일이다.

하지만 사랑은 다르다고 근은 믿었다. 원래 있던 자리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와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 쿨한 것을 멋지다고 생각하는 요즘, 청년들의 사이에서는 그런 생각이 당연한 일이었다, 과거에도 그렇게 생각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근은 마지막으로 청소기를 켜서 청소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의자에 앉았다. 켜져 있는 노트북의 네모난 화면 속에는 노골적으로 드러난 한 여성의 사진이 있었다.

[네이버 연합뉴스] “톱스타 A, 과거 남자친구가 누드사진 유포

평소에 개인적으로 흥미를 가지고 있던 연예인이었다. 찢어진 눈에 가녀린 사지는 봉긋함을 넘어서 왕성한 그녀의 가슴과 엉덩이를 더욱 돋보이도록 했다. 근은 저런 창녀가 있다면, 나는 그녀와 결혼 하겠어라고 생각했다.

한때는 그녀가 무대에 올라와 흔드는 모습을 보며, 페니스를 휘어잡고 마구 흔들었던 적도 있었다. 만약 근이 그녀의 열렬한 팬이었다면, 근의 페니스는 울화가 치밀어, 생명의 힘을 가진 눈물을 토해냈을 것이다. 하지만 근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그냥 관심없는 연예인일 뿐이었다.

그녀의 남자친구는 그녀에게 차이고, 다시 한 번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생각에 저런 짓을 한 것이겠지. 저런 짓을 하는 남자는 대게 복잡한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근은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녀와 더 이상 섹스를 할 수 없다는 생각, 그것이 남성을 미치게 만드는 것이다.

근의 스마트폰은 쉴 새 없이 울리고 있었다. 혼자서 뭐가 그렇게 할말이 많은 지 똑같은 외침을 반복하며, 주인의 심기를 조금씩 건드렸다. 결국, 근은 핸드폰을 들었다.

, 애리에요. 같이 밥 먹을까요? 내일, 시간 어떻게 돼요?”

한연대학교 성학과 2학년 신애리였다. 지난 여름방학에 참여했던 전국 대학생 하계 해외봉사단에서 처음 만난 후배였다. 해외로 떠나는 날, 근은 초록 색 원피스에 흰색 클러치를 들고 서있는 여자아이를 보았다. 그녀는 패션워크에 워킹을 하러 가는 듯 꾸민 차림이었다. 처음에는 그녀를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 할 수 밖에 없게 행동했다.

비행기에서 근의 그녀는 옆자리에 앉았다. 안 그래도 저가 항공사의 좌석이라 좁은데, 그녀는 자꾸 다리를 꼰 채 몸을 꿈틀거렸다. 근은 그녀의 움직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는 할리우드 배우 아만다 사이프리드처럼 동그랗고 쌍커풀 짙은 눈에 갸름한 얼굴, 그리고 도톰한 밑입술까지 수려한 외모를 갖추고 있었다. 자꾸 옆에서 조잘대는 모습이 꼭 대낮부터 배고프다고 찡찡대며 우는 참새들 같았다. 근은 억지로 그녀의 만담을 받아주며 가까스로 그 여정을 끝냈다.

그녀는 해외봉사를 다녀 온 후에도 근에게 연락을 해 왔다. 봉사가 거의 끝날 때쯤, 근은 그녀가 같은 학교에 다닌 다는 것을 알게 됐고, 심지어 바로 옆에 있는 건물에 기생하는 성학과 소속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성학과 학생이라 호기심이 많아 저렇게 말이 많은가 생각했다. 애리는 일주일에 1, 꼭 같이 밥을 먹자며 연락을 취했다.

캠퍼스 내에서 마주칠 때마다 애리는 항상 몇 명의 남자들과 함께 걸어가고 있었다. 안타까운 사실은 그 남자아이들이 근이 보기에는 별볼일 없는 아이들이었다. 애리가 탐나서 그녀를 뇌 속에 들여놓고 싶어 낸 질투가 아니었다. 정말로 별로인, 청춘이라는 매력지수로 봤을 때 결코 높은 점수를 줄 수 없는 그런 남자들이었다. 애리가 연락을 할 때 마다 근은 여러가지 핑계를 댔다.

친구와의 약속, 교수님과의 상담, 과제, 동아리 등등 신입생이 관심없는 선배와 밥을 먹기 싫어 늘여놓는 귀여우면서도 진지한 핑계들이었다. 학교에서 직접 마주칠 때면, 그녀는 이상한 억양으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은 오빠~”

부담스러웠다. 애리는 독특한 말투를 가지고 있었다. 반말과 존댓말을 자꾸 섞어 사용했다. 처음에는 외국에서 살다 와서 한국말이 조금 서툰가?” 하고 생각해봤지만, 아무리 봐도 그런 느낌은 아니었다. 그냥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하는 듯 보였다. 근은 어김 없이 또 하나의 핑계거리를 찾고 있었다.

, 내일은 집에 좀 일이 있어서

가정을 이용한 거짓말, 안 통할 리가 없었다.

그래요? 알겠어, 다음에 먹어요.”

돌아오는 시원한 대답, 역시 신애리였다. 한연대학교의 퀸카가 해야 할 반응이었다. 근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혼자 생각에 잠겼다. 이것저것 생각했다. 학자금과 장학금 문제, 그리고 아르바이트 업주와의 불화 문제 등 너무나도 사소하지만, 현실에서 가장 골치 아픈 문제들이었다.

항상 사랑 같은 낭만적이고 불확실한 것만 고민하고 산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근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시계의 분침을 응시했다. 1825 

“벌써 이렇게 됐나?”

근은 자신도 모르게 말을 내 뱉었다. 혼자서 생각하는 동안 꾀 긴 시간이 흘러갔다. 완전히 밤이 들어서면, 한연의 비너스를 제대로 그릴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근은 서둘러야겠다고 혼자서 다짐했다. 그리고는 주섬주섬 그림과 펜, 그리고 이젤을 챙겼다. 간단한 구성이었다.

팔레트와 포스트 칼라, 물감, , 물통 등의 귀찮고 덜렁거리는 것들은 챙기지 않고, 오직 흑연의 감촉으로 수만 가지의 폭을 나타낼 수 있는 연필로 스케치하는 것을 즐겼다. 황홀한 이야기였다. 검은 나일론 롱코트를 걸친 근은 다시 방을 나섰다. 방 앞의 편의점에서 싸구려 캔 커피 한 개를 집어든 근은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특유의 뚝뚝한 걸음으로 아동을 향했다. 광장 입구에 켜진 가로등은 왠지 평소보다 더 밝아 보이는 듯했다. 가로등은 한비의 왼쪽 라인을 전부 비추고 있었다. 근은 아동에 빠르게 도착했다. 습한 저녁의 공기들은 대기 중에 떠서 자신들의 가벼움을 강조하며 뿌듯해하고 있었다. 근이 지나가자 그들은 모두 숨죽였고, 발랄함을 숨겼다. 밤의 캠퍼스는 쥐죽은 듯 조용하고 고요하다. 하지만 낮의 캠퍼스는 많은 학생들이 지나다니며, 여대생들이 여고생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을 보여 주듯 수다를 떠는 장소다.

웃음소리와 청춘의 심장이 뛰는 경쾌한 소리, 서 있는 것만으로도 설렌다. 하지만 밤이 되면 면 상황은 조금 변한다. 청춘의 현실은 이면성을 가지고 있다. 어떤 것이든 열정을 가지고 해낼 수 있다는 용기로 자신을 포장하지만, 속내에는 삶의 고단함과 미래에 대한 막연함, 그리고 사회 구조에 짓눌리고 싶은 패배의식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런 양면의 얼굴을 한 청춘은 그 어떤 캠퍼스에도 존재했다.

근은 서둘러 3층을 향했다. 온통 불이 꺼진 건물 안은 꾀나 섬뜩했다. 공포영화에서 나오는 귀신이 어디선가 나타날 것만 같았다. 닭살이 돋았다. 근은 축지법 귀신을 떠올림과 동시에 우스꽝스러운 괴짜 국회의원을 떠올렸다. 말도 안되는 대선 공략을 내세웠던 그를 생각하면 조금은 웃음이 날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2층에서 3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오르는 순간, 얇은 구두소리가 들려왔다. 분명히 3층에서 나는 소리였다. 근은 몸을 벽에 기댄 채,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졌다.

또각, 또각, 또각, 또각.’

그 소리는 점점 근의 숨을 조여오는 것 같았다. 그 때, 밑에서 두 남녀가 큰 웃음소리를 내며 올라왔다. 근은 몸을 숨기기 위해 3층으로 올라가 반대편 코너 쪽에 숨었다. 누가 봐도 엄청난 소리를 내며 두 야생마는 절정을 향해 달려갔다.

미쳤다. 미쳤어.”

근은 혼잣말로 속삭였다. 이렇게 늦은 밤에 학교 안에서 저렇게 뛰어다니는 이유가 무엇일지 심히 궁금해졌다. 사실, 궁금하기보다는 어둠 속에 갇힌 두려움과 외로움을 떨쳐내기 위해 그들에게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싶었다. 그 구두소리는 여성의 높은 하이힐의 굽이었다. 여성의 구두에 굉장한 성적 판타지를 가지고 있는 근에게 그 정도 소리의 정체를 예측하는 일은 눈으로 보지 않고도 여성의 성감대를 찾아내는 일만큼 쉬운 일이었다.

구두소리는 왜 이제 나지 않는 거지?’

근은 그 소리가 계속 나기를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그 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잠시 동안 근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어디선가 뭔가 갑자기 튀어 나올 것만 같았다. 5분쯤 지났을까? 근은 문제의 강의실로 향했다.

도저히 안되겠다

칠흑 같은 어둠이 잔뜩 끼어있는 그곳을 더 이상 빛 없이 간다는 것은 너무도 위험한 일이었다. 근은 스마트 폰을 꺼냈다. 관심 가질 필요도 없는 메신저 알림 창이 끝없이 울리고 있었다. 근은 플래시를 켰다. 밝은 형광색의 플래시 사방을 강하게 밝혔다. 근은 무서운 좀비가 튀어나오지 않기를 바랬다. 이 세상에 좀비 같은 것은 존재할 리 없다. 하지만, 많은 헐리우드 영화에서는 실제로 좀비 바이러스가 발생 할 수도 있다고 경고하곤 했다. 그렇다. 이 세상에 일어나지 않을 일은 없다. 일어나지 않을 일이 없다면 이 세상 자체도 생길 수 없었을테니까.

근은 미지의 동굴을 탐험하는 사람처럼 조심스럽게 걸어갔다. 근의 시선이 향한 왼쪽 중간의 강의실에는 AH304라는 강의실 명이 써져 있었다. 헷갈렸다. AH303도 바로 옆에 붙어 있었다. 근은 플래시를 끄고 비상구의 불빛에 의지해 좀 더 가까이 문 쪽으로 다가갔다. 3년을 지나다녔어도 적응되지 않는 이 강의실 냄새, 근은 문을 열기 위해 손잡이를 쳐다봤다. 그는 용기 있게 손잡이를 붙잡았다. 왠지 모를 온기가 느껴졌다. 안에 누군가가 있는 것일까? 두려워졌다. 선뜻 열수가 없다. 하지만 더 이상 물러설 곳은 없었다. 후퇴의 마지노선에 몰린 패잔병처럼 근은 선택을 해야 했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이 건물에서 뛰쳐나갈 것인지. 아니면, 문을 열 것인지. 근의 의식은 조금 선명해졌다. 안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뭔가 강한 숨을 내쉬며 속삭이는 소리 같았다.

설마.’

근은 뭔가 서글퍼졌다. 이런 상황에 처하다니... 근은 엄지와 검지로 문고리를 강하고 잡고 단 하나의 소리도 기어나가지 않게 손잡이를 천천히 돌렸다. 첩보영화에 나오는 특수요원처럼 조심스러웠다. 문고리를 다 돌린 근은 조금 문을 열었다. 그 순간, 강한 바람이 강의실 안의 창문과 문을 통해 몸을 비볐다. 격렬한 싸움 후의 섹스처럼 강렬한 바람이었다. 안의 존재들은 그 바람의 움직임을 감지하지 못했다. 두 남녀는 뜨거운 정사를 나누고 있었다. 교탁 위에 앞으로 다리를 벌리고 있는 여성은 고개를 젖히고,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격앙돼 있었다. 간지럼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어린 아이 같았다. 진짜 어린아이라면 큰일이겠지만.

근은 그들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부드럽고, 강하고, 하나가 된 두 사람은 행복해 보였다. 행복의 조건이라고 현대인들이 떠들고 다니는 속궁합 같은 걸로 설명 할 수 있는 쾌락이 아니었다. 모든 공기의 흐름이 멈추고, 당신과 나만의 숨소리가 공존하는 세계였다. 머리를 들이 밀고 자세히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들의 성스러운 나체 옆으로 한비가 근의 시야에 들어왔다. 한비는 그들을 훔쳐보고 있었다. 그 모든 것들을 비춘 가로등은 대범했다. 그 어떤 노을보다도 깊고 잔잔했다. 남자의 등 뒤로 무엇인가가 반짝이고 있었다. 그것들은 마치 지중해 바닷가에서나 볼 수 있는 에메랄드 빛 보석이었다. 보석들은 그의 황토 빛 들판을 흘러내려오고 있었다. 아름다웠다. 화면은 그대로 멈춰 있었다. 근의 시신경을 따라 헤모글로빈들은 온몸의 모세혈관으로 감각을 옮기고 있었다. 무아지경의 상태에 있는 사람은 그들이 아니라 오히려 근이었다. 근은 지금까지 그렇게 격렬하면서도 환상적인 장면을 본 기억이 없었다. 누군가가 말하는 신선한 충격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충격은 오래가지 못했다.

누군가가 뒤에서 근의 입을 수건으로 막았다. 근은 아무 말 하지 못한 채

!’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의식이 사라지는 순간, 느껴지는 가녀린 손바닥, 근의 등을 바쳤다.

무의식의 시간이 지난 후, 근의 의식은 돌아왔다. 자신의 몸이 3개의 테이블에 걸쳐져 누워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눈을 감고 있어서 실루엣은 알 수 없었지만, 앞쪽에는 누군가가 있었다. 숨소리와 온기로 그것이 사람 인 것만 알 수 있었다. 근은 살며시 왼쪽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원래대로라면, 첩보영화에 나오는 그런 납치장면이 등장했어야 했다. 우락부락하고 무서운 형들이 근을 둘러싸고 있어야 하는 것이 오히려 더 나을 뻔했다. 아니다. 마른 동남아 장기매매단에 의해 표적납치를 당한 것이 조금 더 이상하지 않을 수도 있다. 실제로 장기매매단이었다면, 얼마나 무서울까? 하지만 근의 눈 앞에는 연갈색 생머리에 하얀 얼굴, 그리고 남색 원피스를 입은 여성이 앉아 뭔가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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