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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연재] 한연의 비너스(6화), 중독

글한상/소설한상

by 글로밥상 2020. 12. 1.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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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밥상=글로 나아가는 이]  

 

근은 사실 어떤 말인지 이해 할 수 없었다. 심장소리가 좋다... 어색한 표현이었다. 하지만 근의 귀에는 그녀의 어떤 말이든 아름답게 들렸다. 그는 지금 자신이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고 굳게 믿었다. 

 

사실, 두 사람이 마주친 지는 24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둘은, 그 짧은 시간동안 굉장한 정서를 교감하고 있었다. 클럽에서 만나 인스턴트 사랑을 나누는 도시의 밤과는 달랐다. 새벽이었고, 도시가 아닌 학교였으며, 궁극의 육체적 결합은 없었다. 그들을 둘러싼 공기는 다른 이들과는 달리 굉장히 따뜻했다. 날이 밝으면서, 해의 기운이 다시 올라오고 있었다.  

 

 

 

애희는 근의 어깨에서 잠들었다. 근은 그녀가 잠에서 깰 수도 있다는 생각에 가만히 있었다. 그저 그녀의 숨소리에 집중하며 한비를 바라보았다. 신기했다. 한비의 얼굴은 교묘하게 애희를 닮아 있었다. 분명히 한비는 스페인과 브라질의 혼혈 같은 서양 미인의 얼굴이었는데, 이상하게도 애희의 얼굴과 비슷했다. 그 얼굴을 바라보고 있자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대담하게 행동해야 할 상황이었다. 근은 자신도 모르게, 그녀에게 키스 했다. 그녀는 자고 있어서인지 근의 입술을 느끼고 있지 못하는 듯 했다. 물론 근이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녀가 깨어 있었는지, 잠들어 있었는지...

 

해가 뜨고 있었다. 새벽을 알리는 요란한 참새소리 때문에 애희는 잠이 깨고 말았다. 그녀는 깨어나 몸을 움츠렸다. 일교차가 심한 초가을 날씨였다. 겨울만큼 추웠다. 애희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근은 빨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애희가 말했다.

 

“이제 갈까?, 넌 내일 수업 있지 않아?”

“네, 있죠! 들어가요 이제”

 

근과 애희는 일어나 강의실을 나왔다.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두 사람은 아동을 가로질러 학동 입구로 갔다. 애희는 하품을 했다. 많이 피곤해 보였다. 나른했지만 근은 왠지 기분이 좋았다. 밤새 그녀와 함께 있었고 그 밤은 짧게 느껴졌다. 청춘이 느끼는 설렘의 표본 같은 감정이었다. 교수와 학생의 관계가 아닌 연인 같이 느껴졌다. 학업에 대해 열띤 이야기를 펼치며, 밤을 샌 최초의 여인. 물론 그보다도 100배는 좋은 느낌. 애희는 수줍은 미소를 건네며 이제 가야겠다는 눈빛을 보냈다.

 

“안녕, 오늘 즐거웠어. 내일 수업 잘 듣고.”

“그리고... 나한테 키스 했으니까, 이제 다른 여자 만나면 안돼. 알겠지?”

“아, 네!? 네...!”

“진심이야?"

"그럼요. 진심이죠...“

 

애희는 ‘피식’ 웃었다. 인사가 끝나자마자 애희는 서둘러 가버렸다. 근은 아무 말 없이 떠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얼마동안 바라보았다. 그녀의 뒷모습은 아름다웠다. 인간의 미를 표현 할 수 있는 그 어떤 말로도 설명 할 수 없었다. 근은 그녀가 지나간 곳을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와 함께 있었던 시간동안 근은 다른 세상에 있는 것 같았다. 하늘을 편안하게 날고 있는 기분, 침대에 누워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잠이 들기 전의 기분이었다. 오르가즘이란 것을 잘 모르지만, 인간이 느끼는 감정 중에 가장 훌륭한 감정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녀의 모습이 완전히 보이지 앉자, 근은 현실로 돌아왔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아침이었다. 해는 떠 있었고, 학생들은 이른 첫 수업을 듣기 위해 강의실로 들어가고 있었다.  

 

2015년 10월 18일, 오후 3시 10분, 대한민국 서울, 근의 자치 방

 

한연 대학교의 캠퍼스는 국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몇 그루의 나무들과 몇 송이 꽃들이 아니었다. 수만 가지 나무와 꽃들은 서로에게 의지하며, 젊음의 에너지를 캠퍼스 내에 방출했다. 이것들은 한연대학교 학생들에게 예술적 영감을 선사하고 있었다. 

 

근은 창가에 앉아 사색하는 것을 좋아했다. 집에 돌아오면 항상 스마트폰에 스피커를 연결했다. 그리고 ‘대한민국이 사랑한 클래식 피아노 Top.100’의 목록을 재생 시켜놓고, 자신의 감성을 표출했다. 클래식은 사람들이 좋다고 말해서 듣는 것이 아니었다. 근은 피아노의 선율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그 느낌이 너무 좋았다. 마치 사랑에 빠졌을 때의 감정처럼. 

 

근은 펜을 들고 스케치를 하기 시작했다. 어제 다녀온 새로운 세계를 상상했다. 아름다웠던 그녀의 존재, 다이아몬드, 지구상에 존재하는 보석들과는 차원이 다른 아름다움, 매번 느꼈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앞으로 그녀를 그릴 생각에 근의 입가에는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굳어 있던 조각 같은 얼굴이 조금 생기를 찾은 듯 했다. 근은 자기도 모르게 그녀의 나체를 그리고 있었다.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골반과 허벅지, 분명히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몸매였다. 근은 펜으로, 그녀의 몸을 조각하고 있었다. 무의 세계에서 오직, 그녀와 자신이 존재했던 그 때를 창조했다. 계속해서 그녀를 생각하자, 문득 그녀가 보고 싶어졌다. 그녀를 다시 봐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근은 “그녀를 찾으려 노력만 한다면 금방 찾을 수 있겠지“ 하고 생각했다. 사실이었다. 같은 학교에서 학생과 교수로 둘은 공존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만난 다음이었다. 

 

어떤 이유로 찾아가야하고,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하면 어떤 말을 해야 할 지가 문제였다. 다른 여자애들 같았다면 폭포처럼 말이 술술 나왔겠지만, 그녀 앞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이런 설렘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전혀 감이 안 잡혔다. 

 

항상 자신이 선수라고 생각했던 근이다. 하지만 지금은 선수가 아니라, 걸음마도 떼지 못한 어린아이보다 못했다. 초조한 근은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많은 카톡이 와 있었다. 항상 근이 먼저 확인하는 카톡은 현철의 카톡이었다. 근은 현철이 자신과 잘 맞으며, 자기를 잘 이해해준다고 생각하는 친구였다. 

 

‘야, 오늘 한 잔 할래?, 나 오늘도 한 방 까였다. 제대로...’

 

근은 영혼 없이 대답했다.

 

‘병신’ 

 

늘 있는 일이었기에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그 나이 때의 이별은 원래 밥 먹는 것처럼 익숙한 일이라고 항상 생각해왔다. 이별이 반복되면 이별이 아닌 사랑에 대한 경험일 뿐이라고...

 

‘9시 좀 넘어서 신촌 포차에서 보자. 나도 너한테 할 말도 있고’

 

잠시 후, 바로 현철에게 답장이 왔다

 

‘응?, 무슨 할 말?’

 

근은 가볍게 현철의 문자를 무시했다. 그리고는 스케치를 마무리 했다. 강의실의 창쪽에서 어두운 밖을 바라보고 있는 여인의 모습이었다. 골반과 엉덩이 그리고 다리가 심하게 과장된 표현이었다. 서정적인 섹시함 정도로 표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근은 그림을 책장에 넣었다. 

 

시계를 보니 8시 35분이었다. 근의 자치방에서 포차까지의 거리는 꾀 멀었다. 근의 자치방은 한연대 후문 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술집과 음식점들이 마구잡이로 들어선 이후로, 캠퍼스 근처에서 인디 밴드 같은 뿌리깊은 하위 문화는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온통 욕망과 상처 그리고 포장된 가면들로 채워진 거리였다. 입대 전까지만 해도, 이 주변에는 가난하지만 열정적인 아티스트들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찾아 볼 수 없었다. 세상은 철저한 약육강식의 구조에 따라 만들어졌고 원시시대 이후부터 현대까지 쭉 그렇게 이루어져 온 것이다. 폭력과 무력은 여전히 존재하고, 약자를 잡아먹는 밤의 하이에나들은 검은 양복차림을 하고 여전히 거리를 서성이고 있었다. 근은 밤에 거리를 지날 때마다 두 가지 생각을 했다. 첫 번째는 밤의 네온사인은 아무런 소리를 듣지 않고 눈으로 보고만 있으면, 참으로 낭만적이고 아름답다는 것이었고, 두 번 째는 이 도시의 낭만들은 정말, 낭만적인 것일까? 라는 생각이었다.

 

좀 고지식하다고 생각 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 근은 조금 슬펐다. 오만가지의 아름다운 문화와 세상을 접해야 하는 젊은 청춘들은 지금, 단지 몇 가지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고작해야 취업, 술, 연애 이 세 가지가 전부였다. 인생의 꿈과 목표 같은 학습적인 생각은 쓰레기통에 쳐 박아 둔 지 오래였다. 제대로 박을 줄 아는 건, 그 짓 밖에 없는 것이었다.

 

포차에 도착했을 때, 입구에 긴 줄이 뱀처럼 늘어져 있었다. 뱀처럼 헐벗은 여자들 그리고 시선을 흘기는 남자들. 즉석 미팅이라는 화끈한 만남을 위해 모두들 작은 설렘을 가지고 기다리는 듯 보였다. 현철이 미리 자리를 잡아 두어서 바로 들어 갈 수 있었다. 즉석 미팅을 위해 이 포차에 온 것은 아니었지만, 우연히 오게 된 사람들도 우연히 즉석만남을 하게 되는 장소였다. 

 

처음에는 거절하고 어색해하다가도, 막상 접하게 되면 재밌고 설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픽업 아티스트’라는 새로운 직업이 인기를 끌고 있었다. 좋게 말하면, 마음에 드는 이성과 원만한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위한 방법을 잘 알고 있는 전문가이고, 나쁘게 말하면, 하룻밤 뜨거운 밤을 보내기 우해 여성을 유혹하는 짐승이었다. 하지만 후자라고 해서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었다. 새로운 만남이라는 것은 젊음에게는 일상의 오르가즘과 같은 거니까.

 

근은 테이블에 앉아 메뉴판을 보고 있었다.

 

“야, 뭘 골라. 그냥 먹던 거 먹어“

 

근은 현철의 말을 무시했다. 그리고는 태연하게 종업원을 불렀다.

 

“저기요. 여기 얼큰 홍합탕이랑, 소주 1병만 일단 주세요.”

 

근은 소주와 탕류를 좋아했다. 차가운 소주를 들이 킨 후, 뜨거운 국물을 마시면 왠지 자신도 마음이 따듯해지고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위로 받는 느낌이 들었다. 아주 추운 겨울 날, 밖에서 오랜 시간 떨다가 방에 들어와 이불 밑으로 들어 갔을 때의 행복감 같은 거였다. 근은 꾹물이 끓기도 전에 요란하게 숟가락을 움직였다. 

 

“야. 저녁 안 먹었냐?, 천천히 좀 삼켜”

 

근은 현철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현철은 근이 뭘 하던 간,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해야겠다는 표정이었다.  

 

“아, 난 언제 쯤, 제대로 된 연애나 할 지 모르겠다. 잘 모르겠어 진짜.”

“니가 그렇지 뭐.” 

 

근의 대답은 단호했다. 단 1%의 동정도 해주지 않았다. 해주고 싶지도 않았다. 

 

“뭐, 이 새키가 진짜”

“야. 나한테 위로 받을려고 불렀냐?

 

근의 두 눈이 현철을 똑바로 응시했다. 현철은 눈을 내리깔고 고개를 끄덕였다. 한 두 번 있던 일이 아닌 듯 했다. 

 

“그래. 내가 미안하다. 너한테 맨날 같은 이야기나 하고 있고.”

 

현철은 직장에서 짤린 가장처럼 소주 잔에 소주를 힘 없이 따랐다. 그리고는 바로 들이켰다. 

 

“캬, 오늘 소주 맛이 좀 받네. 하하하.“

 



언제 그랬냐는 듯, 현철은 바보같이 해맑은 웃음을 지었다.

 

“야. 근데 내가 진짜 궁금해서 물어 보는 건데, 진짜 이 세상에 내 여자가 있을까?”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또, 저번에도 말했잖아, 그런 건 없다고.” 

“니가 만들어 가는 거지. 정해진 운명 같은 건 없어. 사랑도 그 어떤 것도.”  

 

사랑에 대하여 논할 때, 근은 정말 확고한 정답만을 이야기했다. 정답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시끌벅적한 포차의 실내에는 많은 사람들이 감성에 잠겨 자신만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동그란 테이블들 주위에는 대부분 수염 짙은 아저씨들이나 어색하게 차려입은 남학생들이 있었다. 여자들로 이루어진 테이블은 2팀 이었는데, 그 중, 한 테이블 주위를 유난히 많은 남자들이 서성이고 있었다. 깊게 파인 살색 원피스에 검은 웨지힐 구두를 신은 조금은 청순하게 생긴 여자와 연한 청 스키니에 몸에 딱 달라붙는 니트를 입은 여자였다. 그녀들은 포차라는 공간 안에서 가장 관능적인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었다.  

  

현철의 관심은 이미 그녀들에게 꽂혀 있었다. 포차 내에 있는 90%의 수컷들은 그녀들의 냄세를 이미 맡고 출두하기를 망설이고 있었다. 현철이 갑자기 비범한 표정을 하고 일어섰다. 

 

“왜?” 

 

근은 현의 돌발행동에 당황했다. 하지만, 바로 알 수 있었다. 

 

“지랄하지 말고 앉아”

 

현철은 이미 그녀들의 테이블 옆에서 시인 단테의 시같이 멋진 멘트를 짜내기 위해 망설이고 있었다. 그녀들은 마치 수상 결과를 기다리는 미스코리아처럼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현철은 무언가를 말하려다가도 말문이 막혀 제대로 말을 하지 못했다. 여자를 유혹하는 법도 배우지 못하면,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교육의 중요성을 보여주었다. 근은 현철을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현철이 한 마디도 제대로 못하겠구나.‘라고 생각한 근은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현철이 서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어색한 한 마디를 던졌다. 

 

“저, 죄송합니다. 친구가 많이 취해서 그래요.” 

 

정중한 사과였다. 여자들은 근이 귀엽다는 듯, 미소를 보이며 괜찮다는 신호를 보냈다. 

그런데, 그 중 한 명은 어디서 많이 봤던 얼굴이었다. 

 

“어?”

 

“오빠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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