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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시(詩)의 부활을 꿈꾼다” 80년전 조지오웰의 시(詩)방송을 기리며...

글한상/수필한상

by 글로밥상 2020. 11. 12.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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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조지오웰의 에세이집 '나는 왜 쓰는가' 中 오웰이 시 관련 방송을 하고 있는 모습) 


“1년 전쯤 나는 여러 사람과 함께 문학 방송 프로그램을 인도로 내보내는 일을 했다. 주로 당대와 당대에 가까운 영국 작가들의 시를 많이 방송했는데, 그런 작가들이란 예를 들면 엘리엇, 허버트 리드, 오든, 스펜더, 딜런 토마스, 헨리 트리스, 헨리 트리스, 알렉스 컴포트, 로버트 브리지스, 에드먼드 블런든, D.H, 로렌스 같은 이들이었다. 우리는 가능한 경우라면 언제나 시를 쓴 사람이 직접 나와 방송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시와 마이크 中, 조지오웰 

(사진=조지오웰)


‘동물동장’으로 알려진 영국의 작가 조지 오웰은 1942년경 문학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 인도로 내보내는 일을 했다. 이 기록이 기자에게는 매우 신기했다. 무려 60년전 라디오 방송에서 ‘시’를 가지고 방송을 했다니... 물론 그 방송은 영국의 ‘정치적 목적’을 일부 담고 있었지만 말이다. 오웬도 언급했는데 ‘시’는 당시에도 대중에게 큰 인기가 없었다. 

필자는 최근 ‘시’를 주제로 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다. 의도는? 의도는 여러 가지가 있다. 순수한 의도와 불순한 의도가 공존한다. 전자는 좋아하는 ‘시’를 표현하고 알리기 위함이고, 후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잡지사 운영을 위한 자본을 마련하기 위함이다. 기자는 전자에 더 큰 의중을 두고 있지만, 인간의 마음을 갈대 같기에 언제 또 변질돼 버릴지 모른다. 이를 항상 경계해야 한다. 

 


시는 단순한 문학이 아니다. 어떤 이들은 ‘시’와 ‘시인’을 속세에서 동떨어진 성직자나 도인 정도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오해다. 시 또한 인간이 짓는 글이고, 그 글은 시대와 문화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당시’는 벗어날 수 있지만, ‘벗어난 시’ 또한 언젠가 인류가 맞이할 미래나 과거가 되기 때문이다. 

시는 어디에든 있다. 우리의 말, 노래, 속담, 심지어는 생각에도. 시의 존재와 범위에 대해서는 여전히 말이 많지만, 기자는 정답이 없다고 생각한다. 단, 기자는 시는 순수한 인간과 자연을 향해야 한다고 확신한다. 꼭 어려운 수사를 써야만 좋은 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누구나 아는 단어를 써야만 좋은 시라고 할 수도 없다. 시는 작가의 영에서 나와 독자의 영으로 들어갈 뿐이다.

필자는 ‘글로 나아가는 이’라는 필명으로 자신을 나타내 왔다. 필자가 집필 활동을 이어가는데 ‘시’는 큰 디딤판이 됐다. ‘시’를 이용해왔다고 볼 수 있다. 틀린말은 아니다. 다만 기자가 시를 계속 이용하고, 시와 함께 삶을 살아간다면... ‘시’에 대한 필자의 열정이 거짓이 되진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글을 사랑하고, 글쓰기의 이점을 배우게 해준 시에게 진정으로 감사할 따름이다. 

필자는 순간의 자극이 지배한 이 네온의 시대에, 침묵을 지키는 시(詩)의 부활을 꿈꾼다. 시(詩)는 그동안 기록된 수많은 시인들의 정신이 사라지지 않는 한 언젠가 부활을 이뤄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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