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은 봤다. 바라보고, 생각해 보았다. 이해 할 수 없었다. 최근에 듣고 있는 동양철학의 이해라는 말도 안되는 철학 강의만큼이나 어려웠다. 그녀가 자신을 놀린다고 생각 할 수 밖에 없었다.
“미래에 사랑하게 될 사람이요?”
“그래, 미래에.”
근은 그녀에게 자신이 그녀를 최대한 이해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럴 수 있죠. 당연히, 당신을 더 좋아하게 된다면.”
“된다면...이 아니야. 사실이야.”
그녀는 의미심장한 말을 자신 있게 했다. 누구라도 이해하기 힘든 말이었다. 근은 더 확실한 의미를 알고 싶었다.
“그래요. 그게 사실이라도,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알죠?"
“내가 말해봤자, 너는 믿지 않을 거야.”
“정말,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네요. 너는 나를 미래에 사랑하게 될 거라니. 하하하.”
“그래. 재미없으니까, 그냥 자. 앞으로 연락하지 말고.”
그녀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근은 그녀를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이런 사기꾼 같으니라고.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는 거지?'
근은 스마트 폰을 덮고, 책상 위로 던져 버렸다. 그리고는 두 팔로 머리를 감싸고 얼굴을 이불 속으로 집어넣었다. 24살의 성숙한 남자에게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썸의 관계에 있는 남녀가 할 수 있는 대화가 아니었다.
“날 가지고 놀려고 말도 안되는 장난을 치는 거야. 반응해서는 안돼!”
근은 생각이 가득 찬 표정으로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은 낮은 천장을 보고 있었지만, 정신은 끝없는 우주의 세상을 향해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2015년 10월 18일, 오전 12시 30분, 대한민국 서울, 신 애희의 아파트
애희는 샤워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몸을 으스스 떨었다. 그녀의 풍성한 젖가슴이 철렁거렸다. 그녀는 다섯 번이나 샤워를 하고 있었다. 몸에 더러운 오물이 묻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샤워타월로 몸을 씻어 냈다. 이를 닦고, 머리를 감고, 몸을 닦고, 발을 닦는 것까지 한 셋트는 마무리 되었다. 하지만 바로 물을 다시 틀고 샤워를 시작했다. 그녀는 요란하게 그곳을 문질렀다.
그녀가 밖으로 나왔을 때, 몸에서는 빛이 났다. 백옥 같은 피부가 실제로 존재했다. 그녀는 타월로 물기를 닦고, 가운을 걸쳤다. 그리고는 스마트 폰을 집어 들었다. 끝없는 카카오톡 메시지음이 계속해서 그녀의 귀를 자극했다. 그녀는 소리를 줄이고, 메시지 창을 띄었다.
‘안녕하세요. 신 교수님. 오랜만이네.’
익숙한 말투였다. 반말과 존댓말의 조화로 남자는 그녀를 비아냥거리고 있었다.
‘누구시죠?’
그녀는 바로 답장을 보냈다. 아직 마르지 않은 물기는 그녀를 더 야릇하게 만들었다.
‘나야. 애희야. 박두진’
반갑지 않은 연락이었다. 섹스광에 분노 조절 장애를 가진 남자. 그녀를 많이 울렸던 남자였다. 벌써, 12년이랑 세월이 흘렀지만, 그의 뻔뻔함은 여전했다. 그녀는 빨리 끊어내고 싶었다.
‘갑자기 무슨 일이야?’
‘나 여기 한연에 교수로 왔어, 올해.’
‘그런데, 무슨 일인데.’
그녀의 반응은 냉담했다. 아픈 걸 넘어, 치명적인 상처를 남긴 만남이었기에 그녀는 그에게 호의적일 수 없었다.
‘그냥, 만나서 밥이나 한 끼 하자고.’
‘미안한데 난 별로 그러고 싶은 생각이 없어.’
그녀는 스마트 폰을 내려놓았다. 두 사람의 관계는 좋은 추억을 간직한 적이 없는 듯 보였다. 두진의 메시지는 계속해서 왔지만, 그녀는 들여다보지 않았다.
애희는 깊은 잠의 구렁텅이에 빠지고 싶었다. 그녀의 머리 속에는 항상 많은 생각들이 차 있었다. 부쩍, 그녀는 고민이 많아 보였다. 그녀는 습관적으로 밤에 와인을 마시고 잤다. 준 알콜 중독증이었다. 잠을 청하기 위해서 알콜은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였다. 소주나 맥주 같은 술이 아닌 와인이라는 그럴싸한 것을 통해 그녀 자신을 합리화했다.
그녀는 와인과 함께 모짜렐라 생 치즈를 먹었다. 포도의 달콤한 향이 그녀의 입안에 퍼지면서 그녀의 깊은 숙면을 도왔다. 그녀는 간단히 입을 헹구고 침실로 들어갔다. 불을 끄고, 자리에 누웠다.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거친 수염과 오똑한 콧날. 그의 품에 안기고 싶은 포근함이었다. 그녀는 배게를 힘껏 안았다. 그리고 그를 느꼈다. 잠들기 전의 흥분은 항상 그녀에게 아픔의 추억과 새로운 아픔에 대한 설렘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그렇게 잠들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야 하는 걸...까...”
그녀는 혼잣말을 했다.
2015년 10월 20일, 오후 12시 40분, 대한민국 서울, 한연 캠퍼스 연동 강단
나른 한 오후, 애희는 강단에 서 있었다. 모든 남학생들은 그녀의 수업에 집중 하고 있었다. 듬성듬성 여학생들도 보였지만, 대부분은 남자였다. 긴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가을의 햇살은 그녀의 다리를 비추고 있었다. 뛰어난 각선미가 더욱 강조 되는 듯 했다.
"자, 오늘 강의는 여기까지 합시다. 모두들 아름다운 주말 되도록 해요. 그리고 혹시 시간 나면, 근사한 데이트도 하고.“
그녀의 말투는 군인 같은 말투였다. 군대를 다녀 온 남학생들이 더 좋아 할 수 밖에 없었다. 대한민국의 학생 예비군들은 갓 입대하는 장병들의 군 생활에 대해서는 끔찍히도 불쌍하게 생각하지만, 군대 내에서의 여성의 존재는 굉장히 소중했었기에, 사회에 나와서도 그 효과는 컸다. 하지만, 그녀가 가장 매력적일 수 있는 이유는 역시, 그녀의 아름다움이었다. 성숙함과 신비함의 결정체,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 힘들었다.
그녀는 다음 수업을 준비하고 위해 연구실로 들어왔다. 많은 책과 인간의 몸과 중심부를 나타낸 모형들. 그녀는 들어와서, 여성의 클리토리스를 형상화 한 모형을 제일 먼저 닦았다. 부드럽고 거친 손놀림, 그녀는 땀을 흘렸다.
"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릴 적, 애희의 어머니는 항상 한숨을 쉬지 마라고 다그쳤었다. 한숨을 쉬면 재수가 없다고. 하지만 애희는 믿지 않았었다. 게다가 최근에 생활의학 관련 TV 프로그램에서 등장한 한 의사는 한 숨을 쉬는 행위가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말도 했다.
노트북 앞에 앉은 애희는 이메일을 확인했다. 많은 메일들이 와 있었다. 그 중에서 눈에 가장 띄는 메일, 박두진이었다.
‘애희야, 그냥 얼굴만 보는 건데, 왜 그렇게 차가운 거야? 오늘 너 강의 5시에 끝나니까 6시에 학교 후문에 있는 카페 ‘respect’에서 보자. 할 말도 있고‘
애희는 자기도 모르게 두진이 보낸 메일을 열었다. 그를 더 이상 사랑하는 것도 미련이 남은 것도 아닌데, 이상했다. 오래 전의 습관처럼.
그녀는 고민했다. 그를 위해 쌓았던 모든 사랑의 상아탑이 무너졌었던 그 시절이 떠올랐다.
1995년 11월 24일, 오전 01시 40분, 대한민국 서울, 두진의 자치방 앞
겨울이 성큼 앞으로 다가 온 날, 애희는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입김이 나와 그녀의 유리같은 피부에 스며들었다. 발끝과 손끝이 움직이질 않았다. 그보다 더 아픈 것은 마음이었다. 그녀의 가슴은 미칠 정도로 빠르게 띄고 있었다. 달려갔다. 부정하고 싶었지만 발은 무의식을 따라 계속 이동했다.
애희는 얼어붙은 하얀 손으로 비밀 번호를 눌렀다.
‘띠리링’
문이 열렸다. 방안에서는 인간의 몸에서 나는 것과는 다른 체온이 느껴졌다.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두진과 다른 여자는 포개져 있었다. 뜨거운 욕정과 섹시한 욕망이 뿜어져 나왔다.
애희가 본 세상은 그 때, 멈추었다.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타락한 창녀의 새하얀 젖가슴과 얇은 허리였다. 그리고 두진은 창녀를 안고 눈을 감고 있었다.
더 이상 서 있을 수 없었다. 애희는 마음을 다 잡았다. 당장이라도 무너져버릴 것 같은 심장을 붙잡고 뛰었다. 어디로 가는지는 알 수 없다. 끊임없이 다른 생각을 했다. 도저히 버틸 수 없다. 눈물은 이유 없이 떨어졌다. 결국, 풀려버리는 다리, 그녀는 쓰러졌다. 어디에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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